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치오 2세 (문단 편집) == 로마 코뮌과의 충돌 == 루치오 2세가 [[시칠리아 왕국]]군에 굴복한 것을 기회로 [[로마 원로원]]은 교황의 권력을 박탈해 [[공화정]]을 세우려는 시도를 하였다. [[로마]]의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은 원로원과 협조했고, 귀족들은 중립을 지켰다. 그동안 세속적 권력까지 거머쥔 교황의 힘으로 인해 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제 역할도 못하고 그저 교황의 신하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루치오 2세가 시칠리아에게 패배를 해 영향력을 상실하자, 원로원은 아르날도 다브레시아가 이끄는 반교황파 세력과 손을 잡은 뒤, 조르다노 피에르레오니의 주도로 교황이 임명한 대표들을 내쫓고 로마 [[코뮌]]을 세움으로써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루치오 2세는 루제루 2세에게 군사 원조를 요청했으나, 과거에 자신을 왕이 아닌 신하 취급했던 교황이 괘씸해 국왕은 이를 보류하였다. 어쩔 수 없이 루치오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왕]] [[콘라트 3세]]에게 편지를 써 군사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콘라트 3세로부터의 답신이 늦어지자, 루치오 2세는 아예 자기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로마 원로원의 공화정 수립에 대해 동조하지 않고 그나마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로마 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교황은 그들에게 로마에 배치된 요새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팔라티노 언덕]]의 남쪽 지역을 통제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로마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혼란스러워졌다. 루치오 2세는 자신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원로원을 향해 진군하였으나 조르다노에 의해 격퇴당했다. 교황은 원로원과의 전투 중에 돌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회복하지 못한 채 결국 세상을 떠났다. [[분류:1145년 사망]][[분류:볼로냐 출신 인물]][[분류:이탈리아인 교황]][[분류:구타로 죽은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